2019년 여름,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영화 『엑시트』는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코미디와 스릴, 감동을 절묘하게 버무린 이 작품은, 취업난과 자존감의 바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N포세대의 현실을 담아내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조정석과 윤아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진짜 재난은 독가스가 아니라 취업난”이라는 말처럼, 청춘의 ‘생존기’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낸다. 이번 글에서는 『엑시트』의 줄거리 요약과 상징 분석, 그리고 감상평을 통해 이 영화가 왜 여전히 ‘공감 영화’로 기억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줄거리 요약 – 끝이 보이지 않는 청춘의 시작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과거 대학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촉망받던 에이스였지만,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하며 백수 생활을 이어간다. 가족들에게는 ‘민폐 덩어리’, 사회에서는 ‘존재감 없는 청년’으로 취급받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생신잔치에 참석한 용남은 우연히 대학 시절 썸을 탔던 의주(윤아)와 연회장에서 재회한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도시 한복판에 갑작스레 정체불명의 유독가스가 퍼지면서 상황은 일순간 재난으로 돌변한다. 건물 안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용남과 의주는 과거의 클라이밍 실력을 총동원해 옥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고, 맨손으로 벽을 기어오르며,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버텨야만 하는 현실’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이 과정에서 용남은 점차 변화한다. 가족에게 민폐였던 그는 이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엑시트』는 단순한 탈출극을 넘어, 한 인물이 자신을 증명해 가는 성장 이야기로 확장된다.
공간과 상징 – 재난을 빌린 현실 비유
『엑시트』는 서울 도심의 다양한 공간들을 상징적으로 활용한다. 영화 속 옥상, 계단, 외벽, 드론, 사다리차는 단순한 구조물이나 장치가 아니라, 현실의 벽과 기회의 은유로 작동한다.
- 옥상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무나 닿을 수 없다. 보안문은 잠겨 있고, 카드키가 필요하며, 체력까지 갖춰야 한다. 이는 마치 취업 시장의 높은 문턱처럼, 능력만으로는 부족한 현실을 보여준다. - 계단과 외벽
이 사회가 청년에게 던지는 냉정한 구조다. 영화 속 용남은 줄 하나 없이 벽을 기어오른다. 그 모습은 기댈 곳 없이, 오직 자신의 힘으로 버텨야 하는 오늘날 청년의 모습과 닮아 있다. - 드론
감시의 눈이면서도, 누군가를 지켜보는 시선이자 구조의 수단이다. 하지만 구조는 늘 늦고, 긴급 상황에 실질적인 도움은 부족하다. 이는 청년 문제에 대한 사회의 느린 응답과 무관심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엑시트』를 단순한 오락 영화에서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탈바꿈시킨다.
가스보다 무서운 건 사실, 계속 떨어지는 자존감과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캐릭터와 메시지 – 무기력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청춘
용남은 겉보기엔 전형적인 ‘백수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엔 무너지지 않는 자존심과 과거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지 그것을 꺼낼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의주 역시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고객의 무례한 언행과 상사의 압박에 시달리며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있는 청춘이다.
둘은 겉으로는 처지가 다르지만, 실상은 모두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세대다.
이들이 서로를 도우며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연대와 상호 인정, 그리고 함께 버텨내는 법을 보여준다. 용남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손을 내미는 모습은,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낮췄던 이들에게 전하는 반격이자 응원처럼 다가온다.
영화는 말한다. “지금 내가 부족해도, 끝까지 버티고 올라가면 되는 거야.” 그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에게 작지만 단단한 위로가 된다.
결론 – 탈출이 아닌 ‘살아남기’에 대하여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엔 지금 이 시대의 청춘이 살아가는 방식과 현실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용남과 의주가 끝까지 옥상을 향해 오르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매일 버텨내는 인생 그 자체다.
영화는 단지 독가스를 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기력, 냉소, 무시, 취업난, 불공정— 그 모든 보이지 않는 가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말한다. “괜찮아. 아직 올라갈 옥상이 있어.” 그 말은 어쩌면,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